(사)숲연구소Forest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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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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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기슭에 오색딱따구리 가족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청계산에 터를 잡고 살기 이전에 청계산은 그들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공사판 굴착기와 굉음을 내는 각종 기계들이 그들의 소중한 보금자리를 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며 정겹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대혼란이 찾아왔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뭐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굉음은 잠잠해졌지만, 이미 그들은 귀가 먹어 타자의 의사를 듣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 할 수 없게 되었다.

 

오로지 잘 살아야 한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우리도 자연의 울림을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가 되어있는 것은 아닌가.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생각은 ‘소유’에 대한 욕망에 밀려 토론조차 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은 아닌지... 더 이상 우리에겐 새소리가 들리지 않고, 계수나무의 향기도, 흙이 주는 포근한 촉감도, 머루나 다래의 맛도, 계절 따라 변하는 아름다운 채색의 금수강산도, 이 시대 우리에겐 의미와 가치를 부여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의 울림으로부터 너무 멀어졌다는 생각이다.

 

약 160년 전 급진전된 과학의 발달은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 시대부터 과학과 자본주의는 산림을, 아니 생태계를 경제적, 사회적, 때로는 정치적으로 해석을 하며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그 결과, 숲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처럼 과학과 짝이 된 자본주의는 편리성과 합리성, 경제성을 행복한 삶의 척도로 삼아 버렸으며, 인간과 생태계가 지닌 가치의 본질을 희석해 버렸다. 나무를 보면, 먼저 그 나무의 효용성을 따지거나, 가격은 얼마인지 궁금증이 일듯, 인간이 인간을 보면 한 개인의 생산성으로 가치를 매기게 되는 오로지 물질 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으려는 물질만능시대를 낳은 장본인이 바로 과학과 자본주의가 아닌가.

 

과학적 사고와 산업화로 이루어 낸 경제적 성취가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영혼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삶의 지향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새겨 볼 겨를도 없이, 이웃이 뛰면 질세라 따라 뛰며 경제 지표 숫자에 일희일비하며 허둥대고 있는 모양이다.

 

한 때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던 우리들이 물질적 성취만을 지상의 최고 목표로 불나방처럼 도시에 모여 살면서, 자연으로 인해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워하는 마음 없이, 자연을 이용하여 좋은 것만 취하겠다는 심성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는 나무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자신의 나뭇잎 겨드랑이에 내미는 그 약하디 약한 작은 겨울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이가 드물다. 다람쥐나 딱정벌레들, 애벌레와 버섯 같은 수많은 생물들이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여유로운 숲을 일구는 주역이라는 것도 사람들은 잊고 살아간다.

 

이런 팍팍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에코소피아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오인하게 된 것은 인간이 자연과 맺고 살아야 하는 ‘관계’다. 자연은 오로지 인간에게 주어진 이용대상 내지는 착취의 대상으로만 해석을 했다. 즉, 자연이 만든 흙이나 물, 산천에서 자라는 약초나 나무들, 숲이 키워낸 수많은 야생동물들... 이 모두는 인간이 원한다면 언제든 이용이 가능한 공짜로 주어진 대상물이란 잘못된 생각이었다.

 

‘관계’를 물질적 ‘경쟁’만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많이 갖기 위한 경쟁은 다양성의 상실을 통해 획일성만을 가져오지만,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것으로, 서로 ‘다름’을 힘으로 삼아 모두가 상생한다는 뜻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자연은 온몸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어느 시인은 세상을 다음과 같은 시로 노래한다.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위해

통째 지구가 필요하다. 지구는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이제 우리는 ‘나’란 존재가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들풀’ 하나와도 서로 관계하고 있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때이다. 왜냐하면 그 ‘관계’가 우리의 삶 속에 실천이 될 때, 비로소 우리 모두가 바라는 건강한 삶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코소피아는 생태적 지혜란 뜻이다. 나무는 겨울이 오기 전에 이미 이듬해의 봄이 옴을 알고서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린다. 들쥐들도 긴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서, 부지런히 겨울양식을 자신의 둥지에 차곡차곡 저장해 둔다. 인간은 태초에 내장되어 있었던 ‘생태적 지혜’를 버리고 ‘과학’으로 대체했다. ‘존재’를 ‘소유’와 거래하고 상생의 ‘관계’를 잊고 ‘경쟁’에만 매달린 결과, 그 어떤 존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절대적 위기인 지구생태의 대혼돈이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위기 보다 더 큰 위협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귀한 영혼이 오염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울림을 듣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에코소피아는 묻는다.

도대체 우리는 이 땅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이 가을이 다가기전에, 번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한적한 숲을 걷는 여유로움을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고요히 자연의 소리를 듣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숲길을 걸어보고 싶다.

 

(사)숲연구소 이사장 남효창